DRC
° 로그인   ° 회원가입   ° 아아디/비밀번호 찾기

[22화] 양팡님 분량입니다.

 글쓴이 : Kuon Kuon


 밤이 꽤 깊었을 무렵,  마지막 환자의 치료가 끝났다. 에델린은 기진맥
진하여 나의 부축을 받아 잠자리로 걸어갔다.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에델
린의 거구를 부축할  사람이 없어서 그렇게 되었지만,  샌슨은 에델린을
부축하는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참  짓궂어보이는
미소다.
 에델린을 눕히고  나는 카알에게 돌아갔다.  카알은 램프 하나를  마치
모닥불처럼 가운데 놓고는  다른 사람들과 모여있었고, 그  무릎 위에는
슈가 잠들어 있었다.
 램프를 바라보던 터커가 말했다.

 ”저희들도 어디에 빠지지 않는 모험가라고 생각했는데… 여러분들은 더
놀랍군요. 어떤 모험을 하셨습니까?”

 우리가 ‘모험가’라고? 허. 샌슨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우린 모험가가 아니라  여행자일 뿐입니다. 우연히 이 영지
앞에서 에델린을 만났고요.”

 그러자 사만다가 말했다.

 ”겸손하시네요. 저 소년이  가진 것은 OPG잖아요?  보통의  모험가라면
구경도 하지 못할 아티펙트인데.”

 모험가라. 음. 그 낭만적이고 짜릿한 단어가 나를 지칭한다니. 이거 기
분은 요절할듯이 좋은데. 그러나 카알은 우리가 잡담할 시간을  주지않
았다. 카알은 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른 손으로는  눈을 비비며 말했
다.

 ”네드발군, 퍼시발군. 힘이 좀 남았나?”

 ”시킬 일이 뭐지요?”

 ”신전 주위를 경계해야 될 것 같아.  밤이 되었으니 헬카네스의 기운은
이제 사그라들었지만 다른 문제가 생길 거야.”

 흠, 난 그게 뭔지 알겠다. 샌슨도 알겠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뱀파이어 말이죠?”

 터커 일행이 놀란 눈으로 우리를 보았다. 터커가 말했다.

 ”어, 뱀파이어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어제 저녁, 영지 바깥에서 만났습니다. 우릴   아내려 하더군요.”

 ”아, 그래요.”

 카알은 졸린 눈을 비비적거리며 터커에게 질문했다.

 ”그 뱀파이어에 대해 아시는대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저희도 잘 모릅니다. 아마 이곳이 게덴의  세이크리드 랜드가 되자 질
병 중의 질병인 뱀파이어가 생겨난 것 같은데요.”

 ”꽤 신빙성 있는 말이오. 당신들은 어디서 그녀를 만났소?”

 ”저희들이 이 영지에  들어서던 첫날 밤, 그  뱀파이어가 공격해오더군
요. 펠레일이 간신히 막아내었습니다만 그 때 펠레일이  너무 힘을 써버
린 까닭에 그다음날 바로 우리들도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아, 그런 것이었군요.”

 ”예. 다음날부터 먹구름이 끼어 우리는 간신히  병이 더 진전되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들을  옮겼습니다. 영주나 고관들은  이미 다 죽었더군요.
어떤 책임자도 만나볼 수 없어서 우린 산 사람들만  일단 이곳으로 모았
습니다. 바깥에 방역을 위해 구덩이를 파고 기름을  부어둔 것 보셨습니
까?  아마 우리가  오기 전부터 이곳으로 환자들을 모은 모양입니다. 환
자들도 그렇게 말하더군요.”

 터커는 말하다가 진저리를 쳤다.

 ”그런데 시체를 모아 소각하는데 그  뱀파이어가 공격해오더군요. 낮에
뱀파이어를 만나서 너무 놀랐습니다. 간신히  물리치고나서 사만다가 설
명해주더군요. 먹구름  때문에 낮에도 나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맞아,
사만다? 응. 그래. 그 다음에는 보지 못했는데, 아마 여러분을 공격하러
갔다가 크게 당한 모양이죠?”

 ”예. 싸우다가 물리쳤는데 달아나버렸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오늘  밤 다시 올지도 모르겠군요. 아니, 온다고 보아
야겠군요. 우리는 완전히 그녀의 소굴에 들어와 있는 셈이니까요.”

 우리는 대충 의논을  끝내었다. 내일은 반드시 조사를 해서 이  마을이
세이크럴라이제이션(Sacralization)된 이유를 밝혀내야 된다. 그래서 이
루릴, 펠레일은 내일 아침의 메모라이즈를 할 수 있도록 잠들었다. 마법
사들은 푹  잠들지 않으면 메모라이즈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카알과  사만다는 안에서  환자를 돌보기로  했고 에델린은 이미
파김치가 되어 잠들어 있었다.
 그래서 밖으로 나온 것은 나와 샌슨, 터커, 크라일이었다.

 ”결국 몸으로 때우는 사람들만 남았군.”

 터커가 싱글거리며 말했다. 난 크라일이 걱정되었다.

 ”크라일씨. 회복된지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쉬시지요?”

 크라일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야, 나도 염치가 있지! 죽어가는 것을 살려줬는데 어떻게 드러누워 쉬
라는 말이야?”

 산욕열로 죽기도 하나?  뭐, 크라일의 기분을 생각해서 그런 질문은 하
지 않았다. 산후조리가  안좋으면 산모가 죽을 수도  있지. 그런데 산부
(産父)는 어떨까? 킥킥킥.
 난 장작개비를 모았다. 건물 앞 정원에 모닥불을 피우고 우리는 모닥불
주위에 모여앉았다.
 신전 건물 뒷쪽은 산으로 이어져 있는데 그 쪽으로는  문이 없다. 따라
서 어디로 오든  신전 안으로 들어가려면 우릴 지나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신전 안에서 찾아온  커텐을  마치 망토처럼 몸에 두르고는 모닥
불을 등지고 앉아서 (눈이 밝은데 익숙해지면  어둠 속의 적을 볼 수 없
다는 샌슨의 설명이 있었다.) 어두운 바깥을 바라보았다.

 

 크라일은 샌슨에게 꽤 도전적인 눈빛을 보내었고 샌슨도 여유있게 웃으
며 그 눈빛을 받아내었다. 양쪽이 다 기골이 장대하다 보니까 서로 일종
의 호승심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하지만 크라일은 좀 난처한  병으로 쓰
러져 있다가 구출당한 입장이라 위세가 약했다.
 그는 두툼한 눈두덩이 아래에 작은 눈을 가졌고,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묶었는데, 미소를 지을  때 볼에 보조개가 피는 점이 왠지  익살맞아 보
이는 인상이었다. 저런 얼굴에 보조개라니. 그는 그 보조개가 살짝 드러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 우습겠지만, 미드 그레이드에선 왼손의 크라일이라면 제법 이름이
있지. 그쪽은 어떤 모험을 하셨소?”

 샌슨은 우아하게 웃었다. 샌슨도 저런 표정을 지을 줄  안다는 것은 처
음 알았다. 이 치밀어오르는 닭살, 닭살이여!

 ”말씀드렸다시피  전 모험가가  아니라 헬턴트 영지의 경비대장일 뿐입
니다. 그리고 영지의 일로  수도에 보고차 여행하는 길이지요. 모험가라
는 것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입니다.”

 ”그러시오? 흠. 당신  손놀림은 시골 영지의 경비대장  정도가 아닌데?
그 롱소드도 제법이고. 은제요?”

 ”은도금입니다. 저희  고향엔 라이칸스롭도 심심찮게 나타나기  때문에
경비병들은 모두 이런 롱소드를 가지고 있지요.”

 ”허! 라이칸스롭이  심심찮게 나타난다고?  예끼, 여보쇼. 잘하면 트롤
몇 마리쯤은 아침운동 삼아 잡는다는 말까지 나오겠소.”

 ”어떻게 아시죠?”

 당장 샌슨은 허풍을 마구  섞어가며  고향에 나타나는 몬스터들에 대한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게 자랑이냐?  몬스터 많이 나타난다는
것도 자랑이야? 정말  순진한 나의 친구 샌슨이여, 그대는 역시  물레방
앗간에서 마음 졸이며 동네 처녀나 기다려야 할  운명이야. 내가 레이디
제미니의 나이트가 될 운명인 것처럼.
 크라일과 샌슨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서로가 잡은 몬스터에 대한 자
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한숨을 쉬고는 커텐을 목에 두른 채 신전
정문으로 걸어갔다.
 언덕 아래로 보이는  마을의 모습은 을씨년스럽다 못해  괴기스러웠다.
암흑,  아무런 불빛도 없이 암혹 속에서 암흑의  윤곽이 보인다. 달빛은
하늘을 물들이는데는 성공했지만  희안하게도  땅은 밝히지 못하고 있었
다. 그래서 푸르스름한  밤하늘을 배경으로 검은 실루엣의 마을  모습이
내 마음을 음울하게 만든다.
 터커가 다가왔다.

 ”너, 제법이더구나.  오늘 환자들 돌보는 모습. 나, 전쟁에도 나가봤지
만 네 나이 두 배나  되는 전사들도 썩어들어가는 상처를 보고 달아나버
리는 것을 많이 봤지.”

 ”설마 그럴 리야.”

 ”아냐. 아까 네가 피부병 걸린 남자의  몸에서 살갗에 달라붙은 붕대를
떼어낼 때 난 정말 놀랐지. 넌 아주 세심한 동작으로 하고 있었어. 전혀
불쾌해서가 아니라 혹시  그 환자가 아프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얼굴이었
어.”

 누굴 말하는거지?  워낙 많은 환자들의 뒤치닥거리를 했더니 누굴 말하
는지도 모르겠다. 난 그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내가 아플 때 누가 그렇게 해 주길 바라니까요.”

 ”그래? 그래. 간단한 건데, 사람들은 그걸 모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결국 대화가 끊어졌고 나와 터커는  나란
히 담장에 팔을 기대고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신전의 담장이라는게  전
혀 외부의 침입을  막겠다는 의미는 없다.  신전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이
다 그러하듯이 이  담장도 상징적인 의미가 더 많은 것이다.  그래서 나
와 터커는 간단히 팔을 기대고 그 위에 턱을 얹고는 아래를 바라볼 수가
있었다.
 나는 어렵사리 질문할 것을 생각해내었다.

 ”당신들은 어떻게 이 마을을 지나게 되었나요?”

 ”아, 우린  레너스시로 가던 길이었어.  수중에 돈이 달랑거려서, 거기
투기장에서 돈이나 좀 벌려고.”

 나는 가슴이 뜨끔했다.  그 투기장 주인인 실리키안 남작은 우리에  의
해 재산이 완전히 거덜났다. 투기장은 시의 소유니까 그대로 있겠지만.

 ”그 투기장, 말만 들었는데 죽을 수도 있는 것이라던데요?”

 ”요령있게 하면 죽진 않아. 그리고 모험가라는  것은 어차피 목숨 내놓
고 돌아다니는 거니  특별할 것도 없고. 죽기 싫으면 집에서  농사나 지
으면 되는 거잖아.”

 ”그렇긴 하네요. 하지만 일부러 위험을 찾아다닐 이유는 없잖아요?”

 ”아니, 있어. 위험이  많은 곳에 보상도 많기  때문에 위험을 찾아다닐
이유는 충분하지.”

 ”그래요?”

 ”응. 너 아비스의 미궁에 대해 들어봤니?”

 아비스의 미궁?  타이번이  발록을 불러내었을 때  그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발록이 산다는?”

 ”응. 우리가 지난 달에 거기 들어갔었지. 아비스의 미궁에 있다는 엄청
난 보물의 이야기를  들었거든. 하지만 우리가 거기 들어가기로  결심한
것은 거기에 발록이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지.  아비스의 보물에 대
한 그 믿기 어려운 이야기보다는, 발록이라는  위험 때문에 확실히 보물
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나는 곧 엄청난 예감이 떠올랐다. 난 터커에게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터커는 괴로운표정을 지었다.

 ”말하기도 끔찍스러워. 어떻게  반도 못들어가서 길을 잃고  발록을 만
났지. 크라일과  난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고 펠레일도 자신의  마법이
전혀 통하지 않아서  좌절했었지. 그 때 생각만 하면 요새도  등골이 섬
뜩해서 자다가 벌떡 일어나지.”

 터커는 정말 무섭다는듯이 이마를 닦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살아있네요?”

 ”응. 이유를 모르겠는데,  우리를 다 죽여버리려던 발록이 갑자기 사라
져버렸어. 아마 우릴 살려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발록이 그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 어쨌든  발록이 사라지자마자 도망나와서  간신히
살았지. 입구를 찾아나왔을 때는  정말 태양이 너무너무 고맙더군. 하지
만 치료하느라 돈을  다 날려버렸어. 그래서 레너스로 찾아가던  길이었
지.”

 난 탄성을 지를 뻔 했다.
 그 때였구나. 타이번이 발록을 불러내었을 때, 발록은 모험가들을 박살
내다가 불려왔다고 투덜거렸었다. 그럼 이 터커 일행이  그 때의 모험가
들이구나. 참 세상이 좁기도 하군. 터커는 계속 말했다.

 ”발록이 우릴 살려준  것일까? 사만다도 그 점에  대해선 확신하지 못
해.”

 ”발록은 악마잖아요.”

 ”늑대다.”

 ”예? 발록이 늑대라니요? 그게 무슨 말이죠?”
 ”아니, 저기 늑대가 나타났다.  카알이라는 그 양반은 선견지명이 있구
나.”

 터커는 말하면서 재빨리 할버드를 고쳐잡았다. 나는 앞을 보았다.
 언덕 아래에는 창백하게 번쩍거리는 불꽃이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안
광이었다. 그 수효는 대단했다.  어느새 언덕 아래에 늑대들이 모여있었
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